“세 낀 집” 규제 풀었지만… 결국 현금 부자만 웃는다?
최근 정부가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위해 이른바 ‘세 낀 집’ 거래 규제를 완화했지만, 시장 분위기는 예상보다 싸늘하다. 정책 취지는 분명했다. 얼어붙은 서울 아파트 거래를 살리고, 매물 잠김 현상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SK하이닉스 성과급 수준의 현금이 있어야 살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결국 규제를 풀어도 실제로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의 현금 부자뿐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풀어준 ‘세 낀 집’ 규제란?
정부는 최근 비거주 1주택자와 다주택자가 보유한 ‘세 낀 매물’을 연말까지 매도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세 낀 집’이란 세입자가 전세로 거주 중인 상태의 아파트를 말한다.
원래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는 집을 사면 일정 기간 안에 직접 입주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거래 절벽 현상이 심해지자 정부는 한시적으로 실거주 의무를 완화했다.
쉽게 말해 전세 세입자가 있어도 매매가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시장에 잠긴 매물을 다시 나오게 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런데 왜 시장 반응은 냉담할까?
문제는 대출이다.
현재 서울 대부분 규제지역에서는 LTV(담보인정비율)가 40% 수준이다.
예를 들어 15억원짜리 아파트라면 최대 6억원 정도만 주택담보대출이 가능하다.
그런데 여기서 큰 문제가 발생한다.
이미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이 선순위로 잡혀 있으면 은행은 추가 담보가 부족하다고 판단한다.
즉 전세금 비율이 높으면 사실상 주택담보대출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현재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율은 약 50% 수준이다.
쉽게 말해 대부분의 ‘세 낀 집’은 사실상 대출이 막혀 있는 셈이다.
15억 아파트 사려면 현금 14억 필요?
실제 사례를 보면 상황은 더 극단적이다.
15억원짜리 일반 아파트라면 대출 6억원을 활용해 약 9억원 정도의 현금으로 매수가 가능하다.
하지만 같은 가격의 세 낀 매물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세보증금이 이미 집값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추가 담보대출이 나오지 않는다.
결국 매수자는 거의 전액에 가까운 현금을 준비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15억원짜리 세 낀 아파트를 사려면 실제로는 14억원 수준의 현금이 필요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 정도 자금을 즉시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은 현실적으로 극히 제한적이다.
“하이닉스 직원 정도는 돼야 산다”
현장에서는 자조 섞인 반응도 나온다.
최근 AI 반도체 호황으로 SK하이닉스 직원들의 성과급이 크게 늘어난 것이 화제가 되면서, 부동산 시장에서는 “하이닉스 직원쯤 돼야 세 낀 집 살 수 있다”는 말이 퍼지고 있다.
결국 일반 직장인이나 신혼부부 입장에서는 접근 자체가 어려운 시장이라는 의미다.
특히 젊은 실수요자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고 있다.
집값 자체도 부담인데, 대출까지 막혀 있다 보니 사실상 “현금 부자들만의 시장”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오히려 전세 매물만 늘고 있다
정부는 매물 증가를 기대했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 아파트 매매 매물은 다시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전월세 매물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집주인 입장에서는 세 낀 집이 잘 팔리지 않으니 굳이 가격을 낮춰 손해 보며 매도하기보다 전세나 월세를 유지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금리 부담과 경기 불안까지 겹치면서 매수자들도 관망세를 유지하고 있다.
결국 정부가 기대했던 거래 활성화 효과는 아직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규제를 더 풀어야 한다는 주장도
일부에서는 보다 과감한 금융 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예를 들어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이 있더라도 일정 조건 아래에서 추가 주담대를 허용하자는 의견이다.
그래야 세 낀 매물 거래가 실제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신중한 입장이다.
규제를 추가로 완화하면 다시 집값 상승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서울 핵심 지역은 여전히 수요가 강한 만큼, 대출 규제가 완화될 경우 집값이 다시 급등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결국 핵심은 “현금 격차”
이번 정책 논란이 보여주는 가장 큰 문제는 자산 양극화다.
집값이 높은 상황에서 대출 규제까지 강해지면 결국 현금 보유 능력이 가장 중요한 시대가 된다.
같은 아파트라도 누군가는 투자 기회로 보지만, 누군가는 아예 접근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진다.
특히 청년층과 무주택 실수요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실수요 보호와 시장 안정이라는 두 목표 사이에서 정부가 매우 어려운 균형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한다.
앞으로 시장은 어떻게 될까?
당분간 서울 부동산 시장은 거래 위축과 매물 잠김 현상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금리, 대출 규제, 공급 부족 문제가 동시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세 낀 매물 시장은 현금 동원력이 있는 일부 고소득층 중심으로만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지금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 규제 완화가 아니라, 실수요자들이 실제로 접근 가능한 금융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앞으로 어떤 추가 대책을 내놓을지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